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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희

거인 X 스가와라 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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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기서 두 번째 길,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앞으로 쭉 가다가 왼쪽으로 ....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끼익- 끽-

 

오늘도 어김없이 파스 냄새와 운동화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는 체육관 앞으로 도착한다. 스가와라는 구불구불했던 것 같은 골목길을 한 번 뒤돌아보고 씨익-웃었다. 그리곤 카라스노 고교의 배구부들이 들어찬 체육관 앞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스가와라는 창문을 통해 안을 보려 했지만 곧 닿이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옆의 의자를 끌고 와 안을 보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매번 자신의 키가 자라 까치발만 하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검은 머리의 남자를 눈으로 좇았다.

 

이 기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엔 단지 그날은 스가와라가 집으로 가는 지름길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가본 것뿐이었다. 왼쪽으로 빠지자마자 고등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이 보였고,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기합,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바닥과 운동화가 마찰되는 소리들이 스가와라를 들뜨게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곧 흥미를 잃고 집으로 가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날아올랐다.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었던 남자는 날아올랐다. 새카만 머리가 휘날리는 것이 마치 새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다. 태양 같은 사람이다. 그것이 남자의 첫인상이었다.

 

스파이크를 치는 모습을 멍하게 보던 스가와라는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에 한번, 두 번,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스파이크 치는 모습을 보다가 갔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려 스가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카라스노의 체육관 앞을 기웃거렸다. 어느 날은 열린 문틈으로 보였고, 어느 날은 의자 위에 올라가 창문으로 겨우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 의자 위에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던 스가는 갑자기 열린 문에 눈을 크게 떴다. 끼이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에 스가와라는 의자에서 내려오지도 못한 채로 굳었다. 천천히 열린 문틈으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나왔다. 스가는 자신이 동경하는, 매일 바라보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굳은 스가와라 앞으로 왔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단 한번도 이시간에 나오지 않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부실에 무언가를 나두고 왔다고 체육관을 나선것은. 그리고 안을 보고 있었던 스가와라를 발견한것도.

 

스가와라는 놀란 마음에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혼나면 어쩌지? 같은 생각들이 머리를 그득 채웠다. 남자는 놀라 토끼눈을 하고 있는 스가와라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신의 침 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꼬마야. 여기서 뭐해?"

 

의외의 친절한 말에 안 그래도 커다랗게 떠졌던 스가와라의 눈은 더 커다랗게 떠졌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대답이 없어 우물쭈물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너도 배구 좋아해?" 또다시 들려온 상냥한 말에 스가와라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남자는 말갛게 웃었다. 태양같이.

 

스가가 멍하니 그 얼굴을 보고 있잖니 남자는 스가와라의 머리를 흐뜨려 놓고는 자신은 가야한다면서 부실로 가버렸다. 스가와라는 남자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남자가 쓸고 간 곳은 데인것 처럼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저 남자가 태양이여서 너무 뜨거워서 그런거야..

 

어린 스가와라는 그리 받아들였다.

 

다음날 스가와라는 망설엿다. 가도될까? 말아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미 발걸음은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었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체육관 소리에 스가와라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남자를 찾았다. 어디 있지?

 

 

남자를 찾으려 하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는 실망감에 스가의 작은 어깨는 축- 쳐졌고, 발끝으로 애꿎은 땅만 차게 되었다. 오늘은 집에 가야겠다.

 

왠지 모르게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았다.

 

"응? 꼬마야. 오늘 또 왔네?"

 

다시 두근거림이 찾아왔다. 심장은 터질듯 펌프질 했다. 스가와라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은 곳에는 남자가 다시 태양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조금 부끄러웠다. 침착하자. 침착하게....

 

바보 같은 자신에 스가와라는 아무 모션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위로 포근한 손이 덮어졌다. 머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스가와라는 눈을 크게 떴다. 쓱쓱- 머리카락을 헝크러트리는 것에 부드러운 손짓에 스가와라의 고개는 점점 숙여졌다.

 

"저..저.."

 

조그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검정색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어 스가는 땅바닥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은.. 스파이커죠?"

 

소심한 질문의 끝자락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스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나중에..!! 세터가 되서 형한테 토스 올려 드릴게요!!"

 

용기 내 환하게 웃는 스가와라에 남자도 마주 웃어줬다. 그래. 라고하며 다시 스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 남자는 안에서 부르는 소리에 체육관을 들어가 버렸다.

 

그 이후 스가와라의 기행은 끝이 났다. 그 대신 배구공을 들고 공터에 가서 혼자 리시브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티비에서 남자의 뒷모습이 나왔다. 하늘을 나는 뒷모습.중계석에서는 남자를 이렇게 불렀다. '작은거인' . 카라스노의 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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