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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끼뉴

오이카와 토오루 X 히나타 쇼요

@_minnk

 

* * *

 

 

 

 

 

 

 

 

 

 

히나타는 조금 들뜬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나왔다. 오른손엔 네모난 작은 상자가 뿌듯이 들려있는 채였다. 하얗고 소담한 모양새의 상자 주위로는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기분 좋게 바라 본 히나타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역 앞에 있는 제법 유명한 브랜드의 빵집을 나와 평소처럼 익숙한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집집마다 푸르고 붉은 잉어가 허공에서 춤을 추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석양이 내려앉아 타오를 듯 한 하늘 아래 자유롭게 헤엄치는 잉어 떼의 향연 속을 히나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걸어 나갔다. 5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라며, 그 날만큼은 온 세상이 그들의 것인 오늘은 어린이날. 올해로 22살인 히나타 쇼요로서는 사실상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날이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헤헷, 좋아해 주려나."

 

히나타는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손 안의 상자를 응시하였다. 우유빵을 좋아하니까 우유 케이크를 사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단 걸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으니까. 케이크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것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가물가물 했다. 독립한 후로 줄곧 혼자 살아가던 히나타에게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작은 이벤트를 챙긴다는 것은 무척 생소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 녀석도 나와 같은 기분이면 좋을 텐데.'

 

지금쯤 자신의 집 소파에서 한껏 늘어져 있을 귀엽지만 다소 까탈스런 작은 아이를 떠올리며 히나타는 걷는 속도를 점차 빨리하였다.

 

 

 

히나타가 그 작은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무심코 아이를 고양이라고 착각할 뻔 했다. 그 만큼이나 당시의 녀석은 너무나도 작고 마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눈이 되다 만 기분 나쁜 비가 추적추적 내리 붓던 싸늘한 2월. 그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는 단지 런닝 셔츠 한 자락만을 걸친 채 속옷 바람으로 거리에 나앉아 있었다. 추위로부터 저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웅크린 그 가냘픈 등이 너무도 작아 보여, 자신은 아마 거기서 문득 고양이를 떠올렸던 것이리라. 왜였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인데도 히나타는 그 작은 소년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 듯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찰박 찰박 어두운 골목길 사이로 물길을 튀기는 발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떨고만 있던 작은 아이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릿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히나타는 저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서 발걸음을 딱 멈추고 말았다.

 

가까이서 마주한 아이의 얼굴이 처참했다. 오른쪽 눈 두덩이에 큼직하게 난 멍자국이 가장 먼저 보였다. 작은 얼굴 여기저기 날붙이로 그은 듯 한 상처가 만연했다. 왼쪽 뺨은 제법 여러 번 맞았는지 핏줄이 터져서 시뻘겋게 부어오른 손자국이 섬찟하리만치 선명하였다.

 

히나타는 할 말을 잃은 채 우두망찰 서서 그 끔찍한 몰골을 내려다봤다. 아이도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히나타를 주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색 바랜 갈색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저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젖은 눈은 텅 비어있었다. 분명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건만 그 눈이 담고 있는 것은 한 밤의 암흑 같은 공허뿐이었다. 삶의 한 조각 빛조차 보이지 않는, 흡사 생명을 잃은 듯 한 망자의 얼굴. 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주위로 번지지 않았다면 그를 인형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밀랍처럼 죽어버린 두 눈을 히나타는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그 상처투성이의 소년을 응시하던 히나타는, 이윽고 천천히 몸을 숙여 아이에게로 우산을 기울여 주었다. 소년의 텅 빈 눈동자 속에 처음으로 희미한 빛이 감돌다 사라졌다.

 

어디서 무엇을 했던 아이인지, 어째서 이런 꼴인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히나타는, 도저히. 도저히 이 꺼져가는 생명을 그냥 외면하고 갈 수가 없었다. 여기에 이 아이를 혼자 놔두고 갔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것만 같아서.

 

"......같이 가자."

 

마치 운명처럼 청년은 아이에게 손을 뻗었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짧게 회상을 마친 히나타는 어느 새 도착한 주택의 계단을 올라섰다. 처음 아이를 이 곳에 데려왔을 때엔 질문에 대답도 없고 까칠하고, 그야말로 주위에 날을 세울 대로 세운 야생 고양이 같아서 친해지는데 제법 고생이었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어찌나 건방지고 까탈스러운지 툭하면 제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앉아 제멋대로 굴려 하질 않나. 감당을 못 해 녀석에게 휘둘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도 어느 정도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이제는 어찌어찌 제법 사이좋게 지내는 느낌이었다. 나름 형제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 새 자신의 집 문 앞에 도착한 히나타는 버릇처럼 열쇠를 꺼내려다 이내 멈칫하였다. 그리곤 작게 후후 웃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팔자에도 없던 고양이 아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히나타 쇼요는 그 어린 소년을 데려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ㅡ

 

벌컥-

 

"쇼쨩, 어서 와!"

"다녀왔어, 토오루."

 

특유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뿐한 걸음으로 아이가 문을 열면 히나타는 활짝 웃으며 그에 화답했다. 더 이상 싸늘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텅 빈 방안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고 어서 오라며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에 닿지 못했던 히나타에게 있어 그것은 무엇보다도 특별한 선물이었다.

 

"얌전하게 잘 있었어?"

"당연하지! 정말~ 쇼쨩은 가끔 오이카와 씨를 너무 어린애 취급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작게 툴툴거리는 모습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히나타의 체구는 보통 사람보다도 작은 편이라 아이는 12살임에도 히나타의 목 부근까지 닿았다. 물론 그가 또래 애들보다 키가 큰 편이기도 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너무 깡말라서 더욱더 작아 보였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제법 건강해 졌고 그에 맞춰서 키도 쑥쑥 자라는 중이었다.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히나타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아이의 성장을 보며 조금 위기감을 느꼈다.

 

"쇼쨩, 그거 뭐야~?"

 

한참을 히나타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며 볼을 부비던 아이가 이내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서 눈을 빛냈다. 히나타는 상자를 들어서 작게 흔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케이크. 에, 케이크? 아이가 의아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모습까지 너무나 고양이와 쏙 빼닮아서 히나타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오늘이 쇼쨩 생일이야?"

"아니야, 토오루. 오늘은 어린이날이잖아!"

"헤?"

 

의외의 대답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답지 않게 귀여워서 히나타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린이날이니까, 토오루를 위해 특별히 사온거야! 그러니까 이건 토오루에게 주는 선물~"

"......"

"응? 토오루?"

".....정말, 쇼쨩은 날 어디까지 어린애 취급할 셈이야?"

 

에? 갑자기 확 가라앉은 목소리에 히나타가 당황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 어라. 뭔가 상상했던 거랑 반응이... 히나타가 땀을 삐질 흘리며 뒤로 물러나자 그와 동시에 아이의 잔뜩 화난 음성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쇼쨩은 나만 어린애 취급이지!! 맨날 귀엽다느니 작다느니.. 그러는 쇼쨩도 나보다 별로 안 큰 주제에! 툭하면 머리나 쓰다듬고! 아 물론 쓰다듬어 주는 건 기분 좋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이카와 씨 이제 12살이라고?! 어린이날이라니 뭐야!! 어린애 취급하지 말란 말이야! 남의 속도 모르고!!"

"아니, 12살이면 어린애 맞는......"

"시끄러!! 이런 건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주면 안 돼?!"

 

빼액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개졌다. 어지간히 분한지 그렇게 쏟아내고도 연신 씩씩거리고 있었다. 히나타는 난감해져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토오루, 기쁘지 않은 거야?"

"에, 에...?"

"난 토오루가 기뻐할 거 같아서...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사온 건데...... 그렇구나, 토오루는..."

"아니, 잠깐 기다려 쇼쨩.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히나타가 풀 죽은 얼굴로 울먹거리자 이번엔 아이 쪽이 당황해서 팔을 붕붕 내저었다.

 

"나, 이런 기념일 챙기는 거 처음이라 엄청 설렜는데... 이렇게 싫어할 줄은......"

"미, 미안 쇼쨩! 싫다는 게 아니라...!"

"토오루가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난 그냥......"

"너무 기뻐 완전 기뻐 대박 소중해!! 정말 기쁘다고! 오이카와 씨 행복해서 죽을 거 같아!!"

"그럼, 케이크 같이 먹을 거야..?"

"먹어먹어!! 먹을 거야. 먹긴 할 건데...!"

"와아-! 그럼 접시에 담아 올게!"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금세 활짝 웃으며 히나타가 총총 부엌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아이는 '당했다'라는 표정으로 우두망찰 서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애 취급 하는 걸 단단히 고쳐 줄 생각이었는데. 자신이 그의 울먹임에 약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청년은 또 다시 그렇게 제 불만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린다. 그게 너무 얄미워서 힘껏 노려보고 있으면 자신을 향해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러면 또 자신은 야속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심장만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었다.

 

'쇼쨩은 정말, 치사해......'

 

볼을 부풀리며 아무리 불만을 품고 투덜거려도 어쩔 수 없다. 결국 먼저 반한 사람이 지는 거였다.

 

"토오루! 다 됐어. 먹자!"

"......언젠간 쇼쨩을 먹어버릴 거야."

"응? 뭐라고?"

"아무것도."

 

귀엽게 툴툴거리는 어조로 그와 안 어울리는 음습한 다짐을 하며 아이는 짐짓 사랑스럽게 미소지었다.

 

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될 때까지, 앞으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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