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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룬

카게야마 토비오 X 나나세 하루카

@RUNtwoB

 

* * *

 

 

 

 

 

 

 

 

 


 바람이 불었다. 천천히 날아들어온 바람에는 바다가 조금 묻어있었다. 부드럽기보다는 까슬거렸다. 모래가 묻었나 싶어 뺨을 조금 훑어보았지만 말라있었다. 눈물이 말라있었다. 언제 울었나 싶었다. 소금기 어린 채 진득하게 눌어붙은 작은 바다는 잘 닦이지 않았다. 별로 상관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아줄 것 없는 까만 머리카락이 바다에 실려 잠시 흩날렸다. 그렇게 일렁이며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잡았다. 놓았다.

 자전거를 탔더니 꽤 멀리 왔다. 바다였다. 근처에 있지는 않았던 것같은데.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해변이었다.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 탁 트인 게 바다인데도 비밀같은 곳이었으니까. 잘 닦인 바람이 선선해 고개를 들었다. 악의없이 밝은 해가 서서히 덥히고 있었다. 멍했다. 새벽에 나왔더니 아침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와 아무도 없는 여기에 서있다.

 그래봤자 무슨 의미인데, 라는 생각을 참았다. 어제가 떠올랐다.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놓았다.


 그래, 놓았다. 잡은 사람은 없었지만.
잡지 않았다. 받지 않았다. 무시당했다. 져버렸다. 애꿎은 도로의 펜스 하날 걷어찼다. 고개가 내려갔다. 원망과 의문이 땅에 꽂혔다. 오래돼 낡아버린 발만 힘없이 찌그러졌다.

- 애같네.

 다시 들었다. 앞을 보았다. 생생하게 흐릿했다. 흐려졌다. 하지만 보였다. 눈 안에 바다가 사는 아이가 말했다.




1.
바다눈 / 죽은 플랑크톤 따위의 세포로 이루어진 눈과 비슷한 바닷속의 강하물(降下物).





 끌어당기고 있었다. 항상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끌려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모래 속에 파묻힌 돌의 끝같은 것에 계속 걸렸다. 몇 번이고 발목이 걸려, 앞으로 넘어져, 놀라 숨이 턱턱 막혔다. 그때 그저 그대로 넘어져서, 고꾸라져서 바닥에 내 머리카락이 흩뿌려지고, 너처럼 주저앉아, 바다에 갈 수 없구나, 한없이 울고, 주먹이 빨개지도록 치고, 그럴 수 있으면. 몇 번이고 걸려 위험해질 때에도 나는 넘어져지지 않았다. 조절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었다. 그만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내 손을 잡았었다. 잡지 않았다. 절망했었다. 이겨버렸다. 내가.


 나와 같이 맘껏 우는 아이를 만났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울고 있었다. 삼 년동안 울어온 내가 다가갔다. 그 아인 이제 막 눈물지고, 부풀어올라 있었다. 우는 눈이었다.

- 애같네.

 나야말로 울고 있었다.








 토비오는 아직 사람을 대할 줄 몰랐다. 적대적이며 상냥한 방법을 몰랐다. 알더라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를 미워하고 아무도 웃는 낯으로 대했다. 그러다 아이들을 만났다. 상처를 받았다. 아이의 드러난 속의 깜장에 익숙하지 못했다. 언제나 위에 있고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살아와서, 처음 마주했다. 그없이 이대로 갔더라도 결국은 어른 안의 아이를 볼 거라는 걸 몰라서, 그리고 그게 아이라는 걸 몰라서 다칠 거였다. 아무 것도 몰랐다. 마땅한 애였다.

 하루카는 흔들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없지만 강하게 흔들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 수 없었다. 세계에 지진이 났다. 쩍쩍 갈라진 틈새로 '왜' 가 흘러내리는 걸 망연히 보고 있었다. 다시는 끄집어 올릴 수 없는 깊고 깊은 절벽이었다. 도리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있는 나이였다. 알 수 없는 나이였다. 뿌예진 길을 지나 나 잃어버려졌어요, 하고 누구에게 말해야 했다. 처음으로 아주 어리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좀 더 야망있고 애같지 않은가. 생각했다. 생각하는 그것마저 답지 않았다.



 토비오가 바다를 멍하게 바라볼 때 하루카는 그 애를 보았다. 일고여덟쯤 되어보였다. 어린 애가 할 법한 아주 유치한 생각이 났다. 다가갔다. 나랑 놀래?
하루카가 부르자 토비오가 돌아보았다. 눈이 예쁜 애였다. 시기보단 동경이 들었다. 친해지고 싶었다. 안녕? 그래!





2.
Don't be a child. / 철없는 짓 하지 말아라.
                             / 아이가  되지 말아라.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둘은 서로를 꼭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아름에 들어오는 어깨를 소중하게 부여안고, 볼을 부비적대고, 한없이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아줄 수 있었다. 웃음이 슬슬 피어났다. 둘은 얼마만에 웃는 건지 몰랐다. 동시에 눈물이 뚝뚝 났다. 어깨를 축축하게 만들면서도 누구도 서로의 목에 감은 팔을 풀지 않았다. 오랫동안 참은 하루카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토비오가 조그맣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다 토비오도 울었다. 둘은 울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 라는 말로 달래지지 않는 건 얼마나 골치아픈 것인가. 그런데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잔뜩 쌓여있는데도, 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 여기 예쁜 꽃 많아.

 하루카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도로변을 가리키고, 나서서 꽃을 따 엮어주었다. 동그랗게 이어서 옆에서 쪼그리고 앉은 토비오의 머리 위에 얹었다.

- 왕같아, 꽃나라 왕님.
- 왕?

 응, 하고 하루카는 토비오를 일으켜세우고 그 앞에 앉았다. 백성은 나야.

- 봐, 진짜 왕이지? 왕님, 나한테도 꽃으로 만들어주세요.
- 나 그런 거 몰라...

 토비오는 말을 흐리며 멋쩍게 웃으면서도, 도로 앉아 하늘색 들꽃을 하나 땄다. 딴 꽃을 만지작거리면서 더듬더듬 반지를 만들어 하루카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 다행이다, 반지 만드는 거 안 까먹어서.
- 이 반지, 왕이 줬으니까 뭔가 마법같은 거 없어?
- 마법? 아, 이 반지를 끼면 싸운 친구랑 화해할 수 있게 됩니다 - 짠!

 아까같이 베싯 미소가 튀어나왔다.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환하게 웃어버리게 되었다. 고인 눈물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앞에 있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눈물은 상대의 손에 금방 닦이고, 그 손을 맞잡고 일어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었다.

- 수영 좋아해?
- 공놀이 좋아해?

 마주보고 끄덕였다. 쉬운 거였다. 그냥 느끼는 대로, 우리는 어리니까.

- 제일 좋아해!
- 제일 좋아해!




3.
Lost sea, lost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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